우리들 이야기

예배가 지루하다고?

Author
kapcadmin
Date
2024-06-16 15:54
Views
31
팬데믹을 지나 엔데믹을 사는 우리는 교회와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부터 교회 폐쇄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결국 인터넷 유수자(온라인 예배만을 드리는 성도를 일컫는 용어)를 양산하게 된다. 교회적으로는 온라인 비대면 예배와 대면 예배의 논쟁으로 시작하여 결국 예전에 대한 논쟁으로 번지게 된다. 그리고 이머징 처치는 예배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예배를 다감각적인 예배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예배를 쇼처럼 변형시켜 버린다. 예배를 어떻게 신학적으로 정의 하는지 살펴보자.

예배에 대해서 로버트 E. 웨버는 "하나님과의 만남" [1] 이라고 정의한다. D.G. 하트는 “예배는 하나님과의 언약적인 만남 [2] 을 나타낸다. 예배는 참된 교회를 표시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제자화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3] 라고 정의한다. 최승근은 "예배는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고 변화된 모습으로 세상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이다. 예배하는 공동체는 교회 존재 이유이고 사명이다" [4] 라고 정의한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라고 정의한다면 완전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죄인 된 우리가 어떻게 만난단 말인가?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직접 정해 주셨다. 구약에서는 제사법이며 신약에서는 말씀과 성례전을 허락하셨다(레 1-9장; 행 2:41-42).
교회의 약화는 예전을 소홀히 함에서 시작된다. 예전이 소흘 해진다는 의미는 말씀의 약화와 성례전의 약화다. 개혁주의 교회는 말씀만을 강조한 나머지 다른 예전적 요소를 소흘히 하는 성향이 있다. 예전적 요소로는 예배의 부름, 통회의 기도, 신, 구약 성경 읽기, 찬송, 성경 봉독, 목회를 위한 기도, 신앙고백, 축도, 폐회선언 등이다.
일부의 신학자들과 예배 인도자들이 예전이 지루하다는 이유로 변경되어야 한다(포스트모던적 주장)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레위기 9장의 제사장의 임직식에서 아론과 두 아들은 레위기 1-8장까지 성결예법을 시행했음에도 여호와의 명령으로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레 9:7). 아론과 두 아들은 반복되는 속죄제를 지루하다는 이유를 거절하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는 제의 방법이다.
평상시와 달리 속죄물의 피를 성소의 휘장과 분향단 뿔에 바르지 않고 번제단 뿔에 바르도록 명하신다. 이 명령은 아론과 두 아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돈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거절할 수 없었던 이유는 여호와의 명령 때문이었다 (레 9:7; 10) .

그러므로 우리도 예전을 추가 또는 제거하려면 하나님의 명하신 것과 같은지를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에 비쳐서 살펴봐야 한다.
예전이 "지루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지루하다는 말과 동일하다.

D.G. 하트는 예배가 지루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말씀을 듣고 성례를 행하고 찬송하고 믿음을 고백하고 몸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축복(만일 그들이 진심에서 우러난 믿음, 사랑, 복종의 어떤 일정한 양의
어떤 것을 하게 된다면)을 받는다면, 그들은 단지 수동적으로 앉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예배가 영혼이 열리는 경험이라면 어떻게 지루하게 드려질 수 있는가? [5]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개혁주의 전통적 예전이 지루하기 때문에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엔데믹 시대의 예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비상 상황이 아닌 경우에도 온라인 예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런 주장은 자칫 자기중심적인 예배로 흐를 수 있다.
온라인 예배는 스스로 예배를 주관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고 또 지루할 때 다른 화면으로 전환하기 쉽다. 예배 장소로 이동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전통적 예배 VS 문화 수용적 예배 충돌이다. 전통적 예배나 문화 수용적 예배나 모두 성경을 바탕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예배자들에게 예전적 순서에서 예배를 어디부터 어디까지로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기원부터 설교까지, 설교부터 축도까지, 찬양부터 축도까지 라고 답을 한다. 예배는 예배의 부름에서부터 성도의 교재까지이다. 찬양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있다. 대부분은 찬양은 설교를 위한 준비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찬양은 기도이며 신앙 고백이다. 하나님이 구약의 모든 제사를 폐하셨지만 “찬미의 제사”는 폐하지 않으셨다.


온라인 예배를 옹호하는 경우는 예배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고 한다면 방식은 다양화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질문 할 수 있다. 마이클 호튼은 "예배의 요소를 구성요소(필수 요소)와 시대와 장소의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부대상황(교회의 자유재량에 따라 결정된다)으로 나눈다" [6] 고 말한다. 부대상황으로 드려지는 예배 방안이 하이브리드 예배다. 하이브리드 예배의 경우 예전을 파괴하지 않고 현장에서 예배가 진행되고 있고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 장소(부대 상황)를 다양화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안에도 문제점이 있는데 성례전과 성도의 교재를 해결해야 한다. KAPC 산하 L.A. 지역 교회의 예배자들은 온라인 성례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

이와 같은 이유로 온라인 예배 논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방식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은 받지 않으신다. 개혁주의 교회는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경과 개혁주의 예배 신학을 올바르게 지도할 필요가 있다.

Rev. Abraham Nam, D.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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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버트 E. 웨버, 『예배의 역사와 신학』, 장성복 역 (서울: 한국장로교 출판사, 1988), 12.
2. D.G. 하트, John R. 뮤터, 『개혁주의 예배신학』김상구, 김영태, 김태규 역 (서울:개혁주의신학사, 2009), 105.
3. D.G. 하트, John R. 뮤터, 『개혁주의 예배신학』, 65.
4. 최승근, “미디어로서 교회,” 『복음과 실천신학』60권 (2021. 11): 210.
5. D.G. 하트, John R. 뮤터, 『개혁주의 예배신학』, 132.
6. 마이클 호튼 『개혁주의 예배론』, 윤석인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2), 236.
7. Abraham Nam, "The Pastoral and Practical Strategies to Restore the Worship in The Post-Pandemic Era" (D.Min., Evangelia University, 2024), 100-101.

참고도서
D.G. 하트, John R. 뮤터. 『개혁주의 예배신학』. 김상구 역. 서울: 개혁주의 신학사, 2009.
로버트 E. 웨버, 『예배의 역사와 신학』, 장성복 역 서울: 한국장로교 출판사, 1988.
마이클 호튼, 『개혁주의 예배론』, 윤석인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2,

논문
최승근. “미디어로서의 교회.” 『복음과 실천신학』 제60권 (2021): 199-225.
Abraham Nam, "The Pastoral and Practical Strategies to Restore the Worship in The Post-Pandemic Era" D.Min., Evangelia Universit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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